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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잣집', 재물만 많다고 다같은 부자가 아니다

여행에서 담은 흔적/2010-2011 Secret

by 용작가 2011. 6.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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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5일 일요일

김밥세줄의 만찬을 즐기고, 근처에 있는 (거리상으로 10m도 안떨어져있는것 같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을 둘러보았다.
경주시민들에겐 최 부잣집이라 불리우고 있고, 필자도 최 부잣집이란 어감이 더 마음에 들기때문에 계속 그렇게(최 부잣집으로) 부를 계획이다.

최 부잣집이 이번 여행코스에 들어간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인데, 그것은 바로 교리김밥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다.
앞서 말한것처럼 이 여행의 목적은 교리김밥을 맛보기 위함이였기에
다른 멋진 의미를 붙여볼려고 해도 마땅한것이 없다, 단지 그것뿐인 것이다.
사실 부.자.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온 몸으로 반응했는지 최 부잣집에 대한 호기심이 덜 가기도 했던 것이다.
부자가 되길 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거부반응이 오는 것을 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음... 시작부터 이야기가 너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방문전 최 부잣집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의 가장 솔찍한 마음상태를 글로 적어본 것이다.
(물론 최 부잣집에 대해 몰랐을때란 점과 잠시라도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대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적고있다.)


자! 그럼 재물만 많다고 다같은 부자가 아닌 진정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 최 부잣집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최 부잣집 입구, 경주 최 부잣집
(6월7일 베스트포토이기도 하다...풉~! 부끄럽네요. ^0^;;)




부불삼대(富不三代)!! 하지만 최 부잣집은 12대!!!
"최 부잣집 비법전수"



부불삼대란 말을 아는가? 그 뜻은 아무리 부자라 해도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그 부를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것인데,
최 부잣집은 300년이라는 시간, 약 12대에 걸쳐 부자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잘되는 장삿집엔 저마다의 비법을 가지고 있듯이, 최 부잣집도 그들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최 부잣집만의 비법을 잠시 들여다보자~!



맨입으로?? 않되는데..... 그래! 인심썼다!!, 경주 최 부잣집



최 부잣집은 멘토링이 강했던 집안이였다.
가문을 지키는 육훈(六訓)과 자신을 다스리는 육연(六然)으로 정신무장을 했는데,
가문을 지키는 육훈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1.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의 벼슬은 하지마라. 

(당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 일만 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곡식창고에 쌀 80가마 이상은 재어놓지말고, 풍년이 들어도 소작료를 더 받지 말라고 했다한다.
더구나 다른 부농의 소작료보다 훨씬 저렴하게 받았다고하니,
이왕이면 최 부잣집의 소작농이 되고 싶어서 은근히 경쟁도 많이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1.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다른 사람의 위기를 이용한 배불리기를 하지말란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봤을땐 아주 모순이 강한 말이지만, 대단한 집안이다.)


1. 집에 온 손님은 융숭하게 대접하라.

(재물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부자의 넉넉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떠도는 나그네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기위해서 였을꺼란 추측이 가장 신빙성이 높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수단이다.)


1.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나랏님도 힘들다는 가난구제를 사방 백리라는 구역안에서는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흉년이들고 민란이 생길때에도 최 부잣집이 안전했던 것은
그 사방 백리의 안전구역이 자연스레 생성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한다.

역시 뿌린데로 거둔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1. 가문에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도록 하라.

(부자일 수록 더 근검절약을 해야한다는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며느리였다고해도 그 까짓 3년 겸허히 받아 들였을것이다. 어짜피 나중엔 다 자기께 될테니깐.....)



자~ 그럼 가훈 멋지게 만들어놓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까? 물론 아니다!!
최 부잣집에서는 육훈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육연을 가르쳤는데,
그 자녀들은 매일 일어나자마자 먹을 갈아 붓으로 육연을 쓰는 반복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 자신을 보살피는 육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대인애연(對人靄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한다),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낸다), 유사감연(有事敢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한다),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한다),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이 여섯구절을 매일 아침마다 썼다하니, 바보 삼룡이라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새겨지고 몸에 베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최부잣집 사람들의 실천의지는 중용과 의로움에 있었다. 뜰의 한쪽에 적혀있던 문구가 인상적이여서 옮겨본다.

"치우치지 말고, 성급하지 말고, 욕심내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완벽한 한 가치는 없으며, 좌우에 치우침이 없이 의롭게 산다."


사랑채, 경주 최부잣집



안채, 경주 최부잣집



할아버지, 경주 최부잣집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최 부잣집은 왜 망했는가!!



이미 12대째 만석꾼으로 부짓집의 전통을 이어가던 최 부잣집에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본 최 부잣집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러했다.

애초 최부잣집 전설의 시작은 최국선 부터 였는데 최국선의 할아버지인 최진립은 병자호란에 참전했다 전사했다고 한다.
양반이였던 최국선은 직접 평민들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하였는데,
황무지 개간뿐만 아니라 농사짓는 법을 직파법에서 이양법으로 개량하여 부농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고 한다.
최부잣집이 300년간 부를 유지하는 동안엔 조선에 큰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육연과 육훈의 철칙만으로도 충분히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부자인 최준에 이르러 세계제패라는 과욕을 품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게되고 일제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나라에 큰 전쟁이 났을때는 물론이고 빼앗겼을땐 개인적인 부는 정말 아침이슬과도 같은것이다. 
하지만 최 부잣집의 정신력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망설임없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임시정부로 송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최준의 아우인 최윤은 일제 중추원의 참의로 있었는데,
최윤은 최준과 안희제 선생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세운 백산무역주식회사를 보호하고,
이 자금이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될수 있도록 비밀리에 도왔다.
그런 최씨 형제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해방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미군세력에 의해 해방이 되어버린 조국이 그들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치하에서 벼슬을 한 최윤은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고,
무죄를 입증한것에 만족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것이다.

그렇다! 최 부잣집은 일제 치하때 36년간 독립자금을 대면서 그렇게 기울어간 것이다.
그 어떤 보상도 받지못한채 일본의 앞자비가 아니였냐는 말도 않되는 오해를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광복 후 인재양성의 뜻을 품은 최준은  400여년 동안 모아온 전 재산을
지금 영남대의 전신인 계림대와 대구대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더 멋진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현재 최 부잣집은 영남대학교의 소유로 있다. 아니 영남대학교가 최 부잣집의 소유가 되는것인가?



화원의 대나무, 경주 최부잣집 

 

 

 

이건 무슨 식물인가요?, 경주 최부잣집 

 

 

 

 나무, 경주 최부잣집

 

 

 

 안채에 있는 식물(무슨 식물일까요?), 경주 최부잣집

 

 

 

 뒤뜰, 경주 최부잣집

 

 

 

 단지 열려있는 창밖의 풍경을 찍고 싶었을뿐, 경주 최부잣집

 

 

 

항아리, 경주 최부잣집 

 

 

 

안채, 경주 최부잣집 

 

 

 

문고리, 경주 최부잣집 

 

 

 

 창호문, 경주 최부잣집

 

 

 

담쟁이 덩쿨, 경주 최부잣집



알아갈수록 대단한 집안이고 멋진 부자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살고있는 비열한 졸부들의 잣대에 비추어 선입견을 가졌던 것에도 너무 죄송스럽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작성하고 싶었던 여행기였는데, 최 부잣집에 대해선 도저히 가볍게 치부할 수 없었던것 같다.
최 부잣집, 부자같은 부자가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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